[조재휘 영화평론가] 여성의 관점에서 통일을 바라보고 질문하다

원본출처: MMFilm 페이스북 팬페이지 

<련희와 연희>(2017)는 등장인물 두 사람의 동일성과 차이성을 동시에 지시한다. 이름은 같지만 각기 다른 발음의 표기처럼 분단현실로 말미암은 남과 북의 거리차가 있음을 인지시키는 의도된 모순. 즉 이 영화는 여타의 통일을 주제로 한 영화들이 그러하듯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양자가 서로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동일시와 투사, 이를 통한 상호 화합의 드라마가 될 것이고(되어야 하며), 극 중 관계의 친밀해짐과 하나 됨은 개인을 넘어 종국에는 갈라진 국가-공동체의 통합이라는 상상적 미래에 대한 상징적 대응물로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규모가 크고 작음을 떠나 한국영화에서 남북 분단 현실을 다루는 이상 피치 못할 숙명이다.

일단 영화는 경계의 이미지를 약간 던짐으로서 남한 사회에 터전을 잡고 적응했음에도 남아있는 새터민과 한국 사회의 거리감 내지 단절을 묘사하려 한다. 도입부의 문지방과 편의점 계산대를 가운데 둔 와이드 숏으로 불량배들과 련희 사이의 벽을 배치하는 장면이 그러하다. 하지만 이 영화의 구도에는 단지 남과 북 간의 경계만이 배치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가학적인 폭력의 주체인 남성과 수동적 타자로서 억압받고 수난당하는 여성의 대비가 처음부터 거듭 반복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여성의 관점에서 통일을 바라보고 질문하려 시도하면서 다소 복잡한 소재를 건드리려는 욕심을 보인다.

다소 의외인 건 영화에서 련희와 연희의 관계가 첨예한 갈등의 선을 그리지 않고 쉽게 맺어진다는 점이다. 출신은 다르지만 두 사람을 묶어주는 요소가 두 가지 있으니 사회 하층민으로서의 계급적 정체성, 그리고 여성이라는 젠더적 정체성이다. 련희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만으로 생계를 꾸리며, 연희는 그녀의 집에 의탁해 겨우 머물 곳을 구할 만큼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다. 국가로부터 도망쳐 나온 국외자와 가정에서 뛰쳐나온 가출소녀의 어울림은 곧 자신들을 책임져주지 않는 국가-아버지-남성적 주체로부터 버림받고 착취당한 두 여성의 연대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공교롭게도 영화는 폐지를 줍다 빼앗기는 할머니, 진상 손님에게 시달리는 중년의 련희, 불량배들에게 봉변을 당할 뻔한 연희의 배치를 통한 여성수난사의 성격 또한 드러내고 있다.)

모성(母性)의 모티브가 덧대어지면서 다르면서도 같은, 같으면서도 다른 두 사람의 유사와 대비가 더욱 선명해진다. 련희는 탈북 과정에서 잃은 딸의 기억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한편 연희는 태어날 아이에 대한 기대와 불안을 느끼고 있다. 죽은 아이와 생명을 얻을 아이. 아이는 어머니였던 련희와 어머니가 될 연희를 묶는 키워드인 동시에, 분단 현실 속에서 죽은 아이로 표상되는 과거와 련희-연희의 보살핌 속에서 커갈 새 아이를 통한 미래의 희망을 상징하고자 함일 것이다. <련희와 연희>는 이처럼 통일이라는 문제의식의 연장선에서 페미니즘의 프레임을 포개어 보다 복합적인 담론의 발화를 끌어내려 한다.

다만 <련희와 연희>가 메시지 중심의 영화가 되면서 노출하는 몇몇 한계점 들은 안타깝다. 일방적인 가해자 남성과 피해자 여성 간의 이분법적 대립구도는 페미니즘의 화두를 두고 다양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선 다소 단순한 감이 없지 않으며, 개연성과 핍진성이 부족한 일부 장면은 감상자의 몰입을 저해한다. 련희와 연희의 관계를 그려냄에 있어서도 남과 북의 문화 차이로 인한 충돌을 보강했다면 남녀 차별 중심으로 옮겨가 다소 모호해진 통일의 주제가 보다 선명해졌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남는다. 그럼에도 76분의 짧은 러닝타임과 저예산의 한계 안에서 새터민과의 공존, 성차별, 사회적 약자 간의 연대라는 다양한 문제의식을 통일이란 주제에 심도 있고 맞물려보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련희와 연희>의 메시지는 현재의 관객에게 시사하는 바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조재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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